이슈와 쟁점
지역 균형 발전의 방향
전명진(중앙대학교 교수)

지난 반 세기 동안 정부는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국가의 중요한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다양한 지역 개발 사업을 추진해 왔다. 1990년대의 서해안 개발, 참여정부 시절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 및 기업도시 건설, 이명박 정부의 광역경제권과 4대강 사업 등이 대표적인 국토 균형개발 정책 사례이다. 하지만 그동안 지역 균형 개발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를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구분한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경제적 효율성에 기반을 둔 수도권 규제 반대론자와 사회적 형평성에 기반을 둔 지역 균형발전론자들 간의 치열한 논쟁의 과정을 거쳐왔다. 전자는 수도권의 국제 경쟁력 강화, 시장 원리에 입각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 등을 이유로 수도권의 규제를 반대하는 한편 후자는 인구 및 산업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에 따른 사회적 비용, 수도권의 빨대효과 (straw effect)로 인한 지방 경제의 황폐화, 의료, 교육, 교통 등 지방의 열악한 도시 기반 서비스로 인한 낮은 수준의 삶의 질 등을 이유로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있다.
또한 과거 역대 정부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장기적·종합적 국토공간계획의 틀 속에서 연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른 단편적·분산적·전시적 지역 개발 사업을 양산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노무현정부의 시·도 전략산업, 이명박 정부의 광역경제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은 그 실체가 모호하고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정책의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어 이를 실행 가능한 지역 정책 사업으로 구체화하는데 실패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정부는 지역 개발 정책을 국가 경제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중앙정부 주도의 물리적 생산 기반 확충 및 토목 건설 사업을 통한 단기적 성과 달성에 매달리면서 시장 작동원리, 지역주민의 합의도출을 위한 담론 및 주민 참여,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능력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무리하게 지역 개발 사업을 추진한 것도 사실이다.
과거 정부들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다양한 지역 균형개발정책들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이라는 내적 요인과 2008년 세계 경제위기에 따른 외적 요인이 겹쳐 지역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있다. 지방 도시 쇠퇴, 지방 인구 및 일자리 감소, 교육, 의료 등 복지 서비스의 지역간 격차 심화 등은 지방의 사회·경제적 활력을 떨어뜨려 사람과 기업을 수도권과 대도시로 몰아내는 지역 양극화의 악순환 (vicious cycle)이 계속 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동 인구 감소, 저성장, 인공지능 (로봇)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의 쓰나미가 닥치면 지방의 위기는 더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감소는 인구 의존적 (population-dependent) 서비스 산업의 쇠퇴, 인구 밀도의 감소 및 빈집 증가로 인한 정주 공간의 황폐화, 교육, 의료 등 복지 서비스 기업의 시장 퇴출로 인한 지역 주민 삶의 질 저하 등으로 이어져 지역 양극화의 악순환이 강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구 고령화로 인해 지방의 노동 생산 기반이 약화되고 의료복지 비용 증대, 노인 부양을 위한 사회적 비용 증가 등으로 지방 재정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양질의 일자리는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 혁명으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에서의 고용기회 감소는 인구 감소를 가속화해 지방의 존립기반을 현저히 약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즉 농촌 소멸, 지방 소멸, 도심 소멸이 강 건너 불이 아닌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토 및 지역 정책 프레임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균형발전법’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발전과 지역 간의 연계 및 협력 증진을 통하여 지역경쟁력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함으로써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법은 중앙 정부의 시각에서 하향적 접근을 통한 지역 문제 해결이라는 과거의 방식을 전제하고 있어 지역 정주 공간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16년 UN Habitat III에서는 포용성 (inclusiveness), 안전 (safety), 복원력 (resilience), 그리고 지속성 (sustainability)을 중요한 도시 및 지역발전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주·포항 지진, 제천 화재 사건은 지역 안전과 복원력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또한 인구 규모, 지역 총생산 등의 총량적 지표 설정보다는 실제 지역 주민이 경험하는 삶의 질 (quality of life)이나 복리 후생 (well-being) 수준의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지역균형발전의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최근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 원인이 주택 수급 불균형 보다는 교육인프라의 지역간 격차 때문이라는 주장은 교육 서비스 접근성에 대한 지역적 차별을 줄이는 것이 지역균형발전의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2016년 OECD의 지역 개요 보고서 (OECD Regions at a Glance 2016)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OECD 국가들의 지역격차 정도를 복리 후생을 나타내는 총 11개의 지표로 비교 분석하였다. 복리 후생 지표는 소득, 일자리, 주택 등 3가지 물리적 지표와 건강, 교육, 안전, 환경의 질, 주민참여,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커뮤니티 만족도, 삶의 만족도 등 총 7가지의 삶의 질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지역 주민들의 주관적 삶의 만족도를 측정하여 이를 지표에 포함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대기오염 노출 정도가 심하고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2000-2014년 기간 동안 창출된 신규 일자리의 80%가 대도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되어 신규 일자리 창출에 있어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대도시 집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역 균형 정책의 핵심적 요소는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인구 유입을 유도해야 하는데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오랫동안 기업의 지방 분산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의도했던 효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제조업 고용의 경우 지방 산업단지 건설을 통해 지역 일자리 창출에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대부분의 서비스 산업이 인구 의존적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대도시 입지 지향적 특성을 가진다. 또한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지식 산업의 경우도 양질의 노동력 확보, 기술혁신 정보 획득의 용이성 등의 이유로 대학이 몰려 있고 주거 환경이 양호한 대도시에 입지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지방으로의 기업 유치가 쉽지 않다.
지방으로 기업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ICT)의 발달은 거리 소멸 (death of distance)을 통해 시공간 제약을 크게 완화시키고 있다. 이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긍정적 요소이다. 물리적 국토 공간에서의 접근성 격차 해소를 위해 고속철도와 같은 첨단 교통 체계 구축을 위한 지속적 투자뿐만 아니라 사물 인터냇 등 온라인 접근성 향상을 통해 국토 공간의 초연결 체제 (hyperconnectivity)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지방 분산을 유도해야 한다. 특히 지방 산업 단지가 지역 제조업 고용 기반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듯이 오피스 건물이 집적해 있는 쾌적한 환경의 오피스 파크 (office park)를 조성하여 ICT 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기 위한 선행조건으로 앞의 OECD 보고서가 제시하는 바와 같이 지역 주민의 복리 후생을 나타내는 다양한 지표를 개발하고 평가하여 이들 지표의 지역 격차 수준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지역 주민의 삶을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지방 자치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사람, 화물, 정보의 이동에 대한 시공간 자료를 축적하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및 일자리 감소 등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분석하고 소멸 가능 지역을 예측하여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선제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