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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사례

일본의 국토균형발전정책

이동우(한일국토정책비교연구소 소장)

     1962년에 수립된 제1차 전국총합개발계획(이하 '전총계획'이라 함)에서 2015년에 수립된 제2차 국토형성계획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는 총 7번의 국토계획이 수립되었다.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대체로 1990년대 후반을 경계로 이전에는 '국토의 균형발전'이, 이후에는 '지역의 자립'이 국토정책의 기본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62년에 수립된 제1차 전총계획은 계획의 목표에 대한 기술에서 “…도시의 과대화 방지와 지역격차의 축소를 배려하면서 부존 자연자원의 유효 이용과 자본·노동·기술 등 자원의 적절한 지역 배분을 통하여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라고 함으로써 국토계획의 목표가 지역격차의 해소 및 국토의 균형발전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후 1969년에 수립된 제2차 전총계획, 1977년에 수립된 제3차 전총계획, 1987년에 수립된 제4차 전총계획에서도 국토의 균형발전이 변함없이 계획 목표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제4차 전총계획에서는 계획 책정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전국총합개발계획은 1962년에 제1차 계획이 책정된 이래, 그 기본적 이념을 항상 국토의 균형 발전에 두고…바람직한 국토를 구축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계획을 책정하였다.”라고 언급하고 있어서, 적어도 그때까지는 국토의 균형발전이 전총계획의 일관된 정책목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98년에 수립된 제5차 전총계획부터 국토의 균형발전보다 지역의 자립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제5차 전총계획은 「21세기 국토 그랜드디자인」이란 타이틀로 발표되었는데, 부제를 "지역의 자립과 아름다운 국토의 창조"로 정하고 있다. 계획 중에 균형발전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빈도는 4차례에 불과하나, 지역의 자립이란 용어는 24차례나 등장한다. 이전의 제4차 전총계획에서는 균형발전이 14차례 등장한 반면, 자립이란 용어는 7차례 등장하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 내용 중에 “…본 계획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기본방향 하에서 국토기반 정비를 착실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규정하는 등,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는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정책목표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2001년 6월에 일본정부가 발표한 「향후의 경제ㆍ재정 운영 및 경제사회 구조개혁에 관한 기본방침」에서는 그동안의 국토균형발전정책에 대하여 “…국토의 균형발전은 본래 지역의 개성을 살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전국 어디에 가더라도 똑같은, 특색 없는 지역을 양산할 뿐이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국토정책에 관한 민간 자문기구인 국토심의회는 2004년에 작성된 문건 「국토의 종합적 점검 전반에 관한 주요 논점」에서 “…국토의 균형발전은 국토이용의 과도한 지역적 편재에서 야기되는 제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국가발전을 도모한다는 국토계획의 목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였으나, 최근에는 ‘균형’의 의미가 오해되어 각 지역이 갖가지 시설들을 풀 세트로 보유하고자 하는 사태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급기야 2008년에 수립된 제1차 국토형성계획(전총계획의 근거법이었던 국토총합개발법이 2005년에 국토형성계획법으로 전문개정되면서 전총계획 대신 도입된 국토계획)에서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이념 하에서 고속교통체계의 정비 및 공장ㆍ교육기관 등의 지방 분산을 추진한 결과, 동경권으로의 인구집중과 지역 간 소득격차가 축소되는 등 일정한 성과가 달성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균형발전이라는 용어가 획일적인 자원배분과 지역의 개성 상실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라고 스스로 비판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종래의 국토 균형발전과 차별화된 새로운 개념의 국토 균형발전으로 '앞으로의 시대에 걸맞는 국토 균형발전'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즉, “…자립적이고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복수의 광역권으로 구성되는 국토구조를 구축하고…광역권의 독자적 발전이 국가 전체의 발전에도 기여하는, '앞으로의 시대에 걸맞는 국토 균형발전'을 실현해 나간다. 다양한 광역권의 발전과 지역 간 공생관계가 구축된 아름답고 생활하기 편리한 국토를 형성함으로써, 지역 간 격차 확대에 대한 불안과 각 지역의 격차감을 해소하여 나간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 수립된 제2차 국토형성계획에서도 '앞으로의 시대에 걸맞는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지역의 개성과 연계를 중시하는 「대류촉진형 국토」 및 이를 위한 중층적인「컴팩트+네트워크」 국토구조·지역구조 형성을 통하여 각 지역 고유의 자연·문화·산업 등 독자적 개성이 살아 있는 '앞으로의 시대에 걸맞는 국토 균형발전'을 실현해 나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서 전체에서 국토 균형발전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것은 그 한 문장뿐이다. 반면에 정주자립권, 광역권의 자립, 대도시권의 자립, 섬지역의 자립, 자립적 지역, 자립분산형 지역사회 등 자립이라는 용어는 도처에서 사용되고 있다.
     요약하면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 국토정책의 키워드가 균형발전에서 자립과 개성, 그리고 연계로 전환되었음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국토의 균형발전이 여전히 국토정책의 목표임을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균형은 상대적 개념이고, 자립은 절대적 개념이라서 공존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균형발전의 개념을 시대적 여건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양자의 공존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의 시대에 걸맞는 국토 균형발전'과 같은 용어 사용이 단적인 예이다. 전술한 국토심의회 문건에서는 “…‘균형’이란 2개 이상의 물건 또는 사물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균일’, ‘균등’, ‘균질’ 과 같이 모든 면에서 서로 차이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와는 개념이 다르다. 그런 만큼, 국토의 균형발전이 국토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역의 특성을 살린 발전’ 은 이율배반적인 사항이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균형이 곧 평등은 아니며, 특화발전도 균형발전의 범주 내에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이 균형과 평등을 동일시하는 국민들의 통념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이미 포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균형발전이라는 정책목표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측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