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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

주거권 확보와 주거정책의 과제

박미선(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연구위원)

주거권 확보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주거권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최소한의 주거생활을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인권으로, 세계인권선언(1948년)을 통해 그 내용이 명확히 천명되었다. 모든 이는 자기 자신과 그 가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적정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갖는데, 여기에 음식, 의복, 주거, 의료, 그리고 필요한 사회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이후 유엔총회(1966년)에서 사회권 규약을 통해 주거권을 포함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위한 조치를 정부가 취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사회권 규약은 주거권과 관련된 가장 상위의 국제규범이다. 우리나라도 1990년 가입하여, 사회권 규약을 준수해야 하는 당사국이 되었고, 매 5년마다 사회권 규약의 이행에 관한 국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주택분야에서는 1972년 인간정주에 관한 벤쿠버 선언(일명, 해비타트 I)을 통하여 적정한 주택과 서비스는 기본적인 인권이며, 정부는 모든 이가 이를 충족할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 그 다음번 회의인 1996년 인간정주에 관한 이스탄불 선언(해비타트 II)에서는 그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였다. 벤쿠버 회의가 비적정 주거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환기를 불러왔다고 하면, 이스탄불 회의에서는 이에 더하여 핵심적인 국제사회 이슈로 주거권을 제시한다. 즉, 주택의 기본적인 기능을 충족하는 적정한 주택을 모든 이에게(adequate housing for all)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특히 주거권을 하나의 인권으로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그 이행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으로 촉구하였다.
   해비타트 II 회의는 주거권에 대한 전 지구적 인식을 제고하고 사회적 합의의 기초를 마련하는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재개발 과정에서 자행된 강제철거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고, 국제적으로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마련된 최저주거기준 설정 논의 및 제정, 취약계층과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정책적 고려와 주거기본법에 명시된 주거권 등은 해비타트 II 회의가 이룬 주요 성과로 제시될 수 있다. 2016년 에콰도르 키토에서 개최된 해비타트 III 회의는 기존의 주택에 한정된 주거권의 이슈를 도시권으로 확장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키토선언을 통해 채택된 새로운 도시의제는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시적 차원의 통합적 고려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도시, 교통 등 타 분야와의 통합적 주택정책, 모든 대상을 포괄하는 포용적 주택정책, 소득대비 지불가능한 저렴한 주택의 공급, 물리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주택제공, 불량주거지 개선을 주요한 주택정책의 골자로 제시하고 있다.

주거권 구성요소와 정책수단 및 주거소요 대응의 한계

   주거권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주거(adequate housing)의 구성요소는 7가지로 나누어진다. 우선 법적 점유의 안정성(legal security of tenure), 공공서비스, 편의시설, 사회기반시설 등에 대한 이용가능성(availability of services), 저렴한 주택의 공급 또는 주택과 임대료의 적정한 수준(affordability), 거처로서 물리적인 적합성(habitability), 취약계층도 접근가능하고 이용가능하고 안전한 거처(accessibility), 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 일자리, 의료기관 등에 대한 접근성(location), 마지막으로 문화적 특성에 대한 보호(cultural adequacy)가 그것이다.
   이러한 주거권 실현을 위해 정부에서 활용하는 정책수단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공공임대주택과 같이 직접적인 건설을 통해 적정한 거처를 제공하는 방식, 주거비 보조와 같이 간접적으로 가구의 적정주거를 지원하는 방식, 마지막으로 현재 거주하는 거처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개량사업 방식이다.
   이번 정부 들어서는 주거복지로드맵을 통해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약속하고 있다. 이전 정부의 공급에 비해 양적으로 강화된 공급목표를 제시하고 있다(공공임대 연 평균 공급량: 이명박 정부 9.1만호, 박근혜 정부 11.2만호, 문재인 정부 20.9만호). 또한 그동안 정책대상으로 부각되지 못하던 청년·신혼부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생애주기별 맞춤형 주거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요의 파악과 계획의 수립, 정책집행과 재원배분의 틀은 여전히 중앙집중식, 하향식, 일괄 적용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책수립의 효율성, 집행의 용이성, 관리의 편의성 등을 고려할 때 빠른 정책 성과가 달성가능한 방식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에서 책임지고 확보해야 할 주거권의 대상은 주거복지로드맵에 나와 있는 대상만이 아니고, 그 수치만도 아니다.
   또한 중앙정부에서 설정한 국가적 최소기본수준(national minimum)을 지역에서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상이하게 소요된다. 예를 들면, 최소주거면적을 국가적 최소 수준으로 설정하더라도 동일한 면적의 주거 서비스를 향유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대도시 지역과 농촌지역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즉, 임대주택 매입에 필요한 자금이 지역별로 격차가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정부에서 결정한 매입임대주택 지원 단가는 전국적 수준에서 정해진다. 지역별로 할당된 물량을 달성하기 위해 지방정부와 지방공사는 자체적인 재원을 투입해야하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추가적인 재원 투입이 어려운 경우에는 지원단가에 맞추어 매입한 주택에 입주하려는 이가 없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차입금은 모두 부채로 인식되어 지방공사에서 주거복지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유인이 없다. 우리가 주거권 확보를 위해 주거복지사업을 확대해야 하는 당위성과는 달리, 운용 방식은 여전히 동일한 상품의 대규모 생산이라는 물량 공급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주거정책의 과제

   주거권 실현을 위한 노력은 중앙과 지방정부의 상호신뢰와 협업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 통합적이고 포용적인 주택정책의 실현은 주거권 실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주택부문 만을 고려한 정책을 실시하던 사고틀을 벗어나야 한다. 도시의 성장관리, 교통 부문이 함께 연계된 주택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앙과 지방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중앙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다 할 필요도 없다. 계획의 수립과 재원배분, 집행을 모두 중앙이 컨트롤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지역별로 다른 주거복지소요를 지방에서 파악하고 지역 자원을 활용한 해결방식을 모색하도록 틀을 바꾸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미국의 커뮤니티개발 포괄보조금이나 주택투자 파트너십 프로그램과 같이 포괄적인 주거지원 방식을 시범적용해 보아야 한다. 중앙은 예산을 확보하고, 지방정부가 계획을 수립하고 참여할 유인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계획을 평가하고 예산 집행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을 강화하는 역할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틀이 유지된다고 하면 단기적으로는 중앙의 계획 수립과정에 지방정부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 만이라도 포함해야 한다. 지역의 도시성장관리를 고려하지 않은 중앙의 대규모 외곽 개발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주거권의 확보가 되지 않는 가장 취약한 대상 중에는 쪽방, 고시원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계층이다. 이들의 거처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임대업으로 등록된 것도 아니면서, 상당수 주거급여 수급자의 공적자금을 수입원으로 하고 있다. 매우 유사한 사례가 영국에서 발생했고, 이제 영국정부는 이러한 사업자들의 등록을 완전 의무화하였다. 미등록 후 임대업이 적발되는 경우 매우 과중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들을 악질 임대업자로 규정하여 강력한 규제를 하는 것이다. 또한 다중이 거주하는 거처에 대해 중앙정부가 최소 기준을 법에 명시하고, 지방정부에서 지역 상황에 맞는 기준과 운용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정부보다 더 강화된 기준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강화과정에 중앙정부는 기초지자체 전부에 의견수렴 과정을 수차례 거치며 정책을 수립하였다. 중앙과 지방은 이런 방식으로 상호 협력 관계로 역할이 분담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주거권 확보를 위해 최전선에 서 있는 주체이며, 이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주체는 없다고 본다. 지역별로 차별화되는 주거 소요에 대응하여 지방이 좀 더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이 주거권 확보를 위한 주거정책의 다양화와 지방화로 가는 길이라고 본다.